​혜순황 개인전 Hye Soon Hwang: Paintings and Drawings

     2018년 9월 3일-2018년 10월 5일

        월-금, 11:00-18:00 (토, 일요일, 공휴일 휴관)

회화에 관련된 오래된 관점 중의 하나는 붓은 작가의 손의 연장일 뿐 아니라 작가의 존재를 표현하는 대리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물감을 묻힌 붓이 남긴 점, 선과 면은 작가의 흔적이자 존재를 드러내는 실마리가 된다. 이런 관점은 동서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수용되며, 간혹 입장의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다. 조선시대 수묵으로 그림을 그리던 문인들은 세련된 붓의 흔적보다 붓을 든 주체의 정신이 드러나는 그림을 높이 사곤 했다. 추사의 <세한도>에 보이는 소박함이 오랫동안 인정받는 것처럼 말이다. 서양의 회화는 선보다 면과 입체를 강조했기 때문에 형태와 색의 사용에서 작가의 개성을 발견하곤 했다. 베르메르의 광학적 표현이나 터너의 휘몰아치는 바다풍경은 한 작가가 평생 구축한 회화의 세계가 형태와 색을 넘어서 하나의 양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혜순황은 원래 동양화를 공부했지만 그림을 그릴 때 매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황혜순이라는 본명보다 뉴욕 유학시절 사용했던 혜순황이라는 이름의 어감이 좋아서 사용할 정도로 새로운 변화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파스텔과 같은 새로운 재료를 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가 현대미술이 번성한 뉴욕에서 공부했고 새로운 변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전통을 완전히 무시할 정도로 문화적 예의가 없는 작가도 아니다. 동양화를 공부하면서 섬세한 동양의 감수성을 길렀던 과거는 그가 자연에서 추상을 찾는 작업태도에 그대로 나타나는데 이번 전시에는 평소에 관찰했던 식물과 꽃에서 추상을 찾은 작업을 선보인다.

혜순황은 식물과 꽃의 형태에서 반복되는 패턴에 주목하기도 하고 일부를 분리하여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모양을 만들어낸다. 식물의 다양한 형태가 자연의 섭리의 결과이자 고달픈 자연에서 견디며 얻은 결과이듯이 혜순황의 추상도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지나치지 않고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는 단초로 삼고 작업한다. 혜순황이 만든 모호한 형상들은 각기 다른 꽃 모티프들을 추상화하면서 비정형으로 나아간다. 파스텔, 흑연, 볼펜이 그려낸 비정형은 꽃의 구체적인 디테일을 포기하고 색과 선이 융합된 덩어리로 변모하며, 그 모호한 덩어리를 통해 미지의 형태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런 과정은 사실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매우 사소한 자연의 산물을 예술적 형상으로 승화하면서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삶의 질서를 찾으며 예술의 존재가치에 대해서고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고통을 스스로 안고 있느냐고 작가에게 물을 필요는 없다. 보통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작가에게는 삶과 예술이 의미를 찾는 일이며, 반복되는 일상과 통제할 수 없는 현대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은희/전시기획)

 

작가의 글

 

복잡한 도시 속의 삶과 그 안에서 엮이는 수많은 관계들에 지쳐갈 때쯤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 관심은 더 나아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까지 넓혀지게 되었고 이런 자연 속에 존재하는 구조와 형태 그리고 생명력은 나에게 있어 흥미로운 작업의 테마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이름없는 풀 조차도 비, 바람, 따가운 햇살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운다. 이렇게 작고 여린 식물들이 끊임없는 반복에 의해 강인한 생명력을 갖게 되고 그들이 모여 식물들의 집합체와 같은 큰 숲, 대자연이 만들어진다. 대자연을 여행하면서 관찰한 식물들의 모습과 형태를 주로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하는데 단순히 외형을 따라 그리기보다 식물의 입장이 되어 잎맥, 줄기 하나하나를 만들어 나간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섬세함과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선들이 모여 형태를 만들고 형태들이 모여 전체를 결정하는 것처럼 나도 곧 전체의 일부이며 전체를 결정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듯이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다 보면 자연의 생성과 소멸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을 이해하게 되고 나의 존재감을 깨닫는다.

자연이 기하학적인 형태, 선, 반복 등의 추상적인 조형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자연 속 사물에서 조형적인 형태를 이끌어낸다. 흑연, 파스텔 등의 재료들이 여러 번 번갈아 가며 만든 수많은 레이어들에 연필선(visible line) 과 다 쓴 볼펜의 심으로 그린 선(invisible lines)으로 마무리하여 최종적인 선들의 집합으로 이뤄진 추상적인 형태의 결과물이 나온다. 작은 식물들이 모여 자연을 이루듯 하나의 선들이 모여 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다. (혜순황/작가)

​혜순황, Purple Wave, 가변설치, 2018

​혜순황, Root of Relation, 2018

​혜순황, The Flora drawing series 4, 2018

​혜순황,  The Flora drawing series 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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