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영은 인체형상에 움직임을 주는 기술을 가미해 기계와 인간이 결합이 주는 가능성에 대한 고찰을 해왔다. 조물주 또는 자연이 만든 인간의 변화무쌍한 모습과 달리 박종영의 인조인간은 작가의 의도대로 그 기능과 모습이 미리 계획된 범위 내에서만 작동한다. 관객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부여된 기능을 하는데, 그 기능들은 테크놀로지에 점점 몰입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CCTV와 같은 감시기능, 핸드폰에 소통을 맡기는 현대인의 모습 등, 작가가 관찰한 인간의 모습이 그 인조인간에 담겨진다. 수많은 인간의 기능 중에서도 몇 가지로 축소된 것들만 수행하는 그 인조인간들은 박종영의 상상의 세계에서 섹시한 모습으로 때로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단순화된다.

박종영은 인간이 마치 신처럼 새로운 형상을 만들 수 있다는 오래된 과학적 상상력의 전통을 이어가는 작가이다.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텍스트로 읽을 수 있었던 이야기가 어느 사이엔가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예술가의 손을 거쳐 움직이는 기계에 인간의 모습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박종영이 만든 형상은 오래된 마치 고전기 그리스의 조각처럼 어떤 이상형을 가정하고 만든 모습처럼 보이며 주름살, 점, 매부리코처럼 사실적인 표현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사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기보다 그가 추출한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형태를 강조하며 인간의 부족함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권력과 이념의 정글 속에서 감시당하며 모범적인 시민으로 사는 인간의 모습에 유난히 더 주목하는 이유는 그 모범적인 모습의 기계적 은유를 통해 권력과 이념을 피해 경계를 넘나드는 아웃사이더들의 유동적 모습을 숨기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양은희/스페이스 D 디렉터)

 

작가노트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에 의하면 진정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개인적인 숫자는 150이라고 한다. 이런 종류의 관계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우리와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는 그런 관계이다.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 초대받지 않은 술자리에 동석해도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 숫자이다. 이 150이라는 수를 가리켜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한다. 던바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 친구가 1,000명이 넘는 파워유저조차도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150명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끈끈하게 소통하는 사람은 채 20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포털사이트에서 영향력이 큰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나 수십만 명의 팔로워 수를 가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용자, 혹은 1인 방송 진행자들과 같은 인플루언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인플루언서들의 블로그나 SNS를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과 같아지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또한 본인 역시 많은 팔로워들에 의해서 자신이 엿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에 대한 관리에 적극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졌을 때 어떠한 반응을 원하는지에 따라 적절한 사진이나 영상들을 선택하여 게시한다. 만족스럽지 않거나 부적절한 자료들은 진실된 본인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쉽게 게시하지 못한다. 던바의 수 이상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팔로워들에게 자신이 게시물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생각들을 이해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받을 이유도 없다.

이러한 자기감시는 마크 스나이더 (Mark Snyder)가 1970년대에 도입한 개념으로 사회적 상황을 수용하기 위해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능력과 욕망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통제의 차이가 자기 표현, 표면 행동, 비언어적 감정 표현을 얼마나 감시하는지와 직결된다. 높은 자기감시 능력의 사람들은 고의적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며 자신의 공개적인 모습에 대해 적절하다는 의견을 보장받기 위해 청중을 더 면밀히 감시한다. 낮은 자기감시 능력의 사람들은 청중이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의식이 높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행동한다.

자신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자기감시가 높은 사람으로 분류되고, 사회적인 신호와 상황적인 맥락에 잘 호응하는 방식의 태도를 취한다. 자기감시가 높은 사람은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려는 시도를 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계획하는 ‘사회적인 실용주의자’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자기감시가 높은 사람은 상황이나 상대방

현덕식 회화전: 뚜벅이의 시간

Hyun Deok Sik Paintings: Ddubuggi's Time 

     2019년 10월 7일-11월8일

        월-금, 13:00-18:00 (토, 일요일, 공휴일 휴관)

현덕식-나만 믿어!#2-2018-장지에 먹, 안료, 염료, 콩즙, 옻칠-109×128㎝

현덕식-하늘에서 비가 와요

2019-장지에 먹, 안료, 염료,

옻칠-51×36㎝

현덕식은 몇 년 전 ‘뚜벅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제주의 돌하르방이나 동자석처럼 돌로 만든 형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캐릭터이기는 하나 사실 작가 자신을 대변하는 대체자아이기도 하다. 작가처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이런 저런 일상적인 일을 한다. 작가가 제주에 살며 작업하기 때문에 뚜벅이의 일상도 4.3의 역사처럼 아픈 기억이나 양치질하는 소소한 일까지 작가의 삶을 닮아 있다. 뚜벅이는 묵묵히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위로를 건네는 작가의 대변인이다.

이런 캐릭터를 왜 만들었냐고 작가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그가 이전에 그리던 <유시도>시리즈가 너무나 무겁고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시도>는 흑백으로 얼음이 녹는 모습을 그린 시리즈이다. 얼음이라는 물성을 표현한 기법도 뛰어났지만 서서히 녹으며 물이 되는 과정을 회화로 담아낸 작업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작가가 고체와 액체의 변화과정이라는 미시적인 세계로 입성했던 것 같다. 이런 그림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우수청년작가’로 상을 받기도 했다.

수상은 예술가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부담을 주었던 모양이다. 그런 부담을 떨치고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찾은 것이 바로 ‘뚜벅이’이다. 뚜벅이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현대인이 만든 말이다. 자본이 물질을 통해 구현되는 사회에서 차를 타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가리키는 자조적인 용어이기도 하다. 뚜벅이는 차를 타지 못하는 소시민의 모습이자 자랑할 것이 없는 삶을 우직하게 받아들이는 보통 사람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캐릭터 ‘뚜벅이’는 처음 이름을 만들 때부터 화려하고 넘치는 삶보다는 소박한 인간의 삶, 즉 작가가 살고 싶은 삶을 살도록 설계된 셈이다.

뚜벅이 그림은 곡선보다 직선으로 그린 게 다수이며 마치 돌이나 나무로 깍은 부조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전통적인 장지에 먹과 안료를 쓰고 옻칠과 콩즙을 더해 그런 효과를 얻고 있는데 그가 오랫동안 연마한 동양화 기법의 경지를 잘 보여준다. 얼굴, 눈, 코, 입, 손, 자세 등은 어떤 정형을 유지하면서 캐릭터로서의 성격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넓적한 코와 입은 돌하르방의 것과 유사하기도 하다. 색채도 적, 황, 청 등 소수의 색에 머물러 뚜벅이의 단순화된 형상과 더불어 그림의 조형성을 통일감있게 만들어준다.

이번 전시에는 2018년 하반기에서 2019년까지 제작한 그림들을 선보인다. 혼자 운동하고 놀고 있는 모습부터 여러 인물로 진화한 그림까지 다양하다. 4.3의 기억을 쓰다듬으며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동백꽃을 담기도 하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산으로 가버린 배에서 위로를 건네는 뚜벅이까지, 그리고 목욕의 즐거움을 담은 그림부터 비와 샤워를 연결한 재치가 돋보이는 뚜벅이 그림에는 고단함을 해학으로 풀어내고 소소함에 재미를 가하는 작가의 재능이 돋보인다. (양은희/전시기획)

현덕식-삼촌! 혼자 아파하지 마세요-2019-

장지에 먹, 안료, 염료, 콩즙, 옻칠-128×109cm

현덕식-나만 믿어!#3-2019-

장지에 먹, 안료, 염료, 콩즙, 옻칠-90.9×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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